용구(用九)는 예순네 괘 가운데 오직 건괘에만 있는 특수한 효다. 여섯 효가 모두 노양(老陽)이어서 한꺼번에 음으로 변하는 자리, 곧 건괘 전체를 하나로 꿰뚫는 태도를 가리킨다. 여섯 용이 하늘을 날되 그 가운데 누구도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않으니(見羣龍无首), 오히려 길하다. 지극히 강한 것이 능히 부드러워지는(剛而能柔) 경지가 여기에 있다.
소상전은 이를 “천덕은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天德不可為首)“고 풀었다. 하늘의 덕은 만물을 낳고 기르지만 스스로 앞에 나서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 강함이 극에 이르렀을 때 그 강함을 앞세우면 도리어 흉하고, 강함을 거두어 부드러움으로 돌아설 줄 알 때 비로소 온전하다. 앞장서지 않는 것이 가장 높은 앞섬이다.
그래서 용구는 건괘의 끝에 붙은 군더더기가 아니라 건괘 전체를 다스리는 열쇠다. 초구의 잠룡에서 상구의 항룡까지, 여섯 단계를 관통하는 마음가짐이 바로 여기 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드러날 때와 감출 때를 모두 알아 어느 하나에 갇히지 않는 것 — 그 유연함이 강함을 완성한다.
수련의 자리에서 이 효는 힘을 쓰되 힘에 매이지 말라 이른다. 몸이 굳어 버티는 힘은 오래가지 못한다. 가장 센 동작은 가장 부드러운 곳에서 나오고, 무게 중심을 낮추어 앞을 내어 줄 때 오히려 무너지지 않는다. 앞에 서려는 마음, 이기려는 마음을 한 호흡 내려놓아 보라. 머리로 몸을 몰아세우지 말고 몸의 감각에 맡길 때, 뭇 힘이 우두머리 없이도 하나로 움직인다. 오늘 하루, 굳이 앞장서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반걸음 물러서 보는 것 — 그것이 강함을 오래 지키는 길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 그리고 용구(用九)를 보게. '뭇 용이 머리가 없다(무수)'고 했지? 내가 제일 잘났다고 머리를 쳐들지 않으니 온 천하가 다스려지는(천하치) 걸세.
강하고 굳센 건의 덕을 가졌으면서도, 부드럽게 변화할 줄 아는 것. 이것이 건괘 공부의 끝이라네."
원문과 주석 — 효사·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과 소상전
用九:見羣龍无首,吉。 용구는 뭇 용이 나타나되 우두머리가 없으니, 길하다.
象曰:用九,天德不可為首也。 상전에 말하였다. ’용구’는 천덕(天德)이 우두머리가 되어서는 안 됨을 말한다.
정이천 『이천역전』
用九者,處乾剛之道。… 无為首則吉也。以剛為天下先,凶之道也。… 天德陽剛,復用剛而好先,則過矣。 용구는 건의 강한 도에 처하는 방법이다.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면 길하고, 강함으로 천하의 앞이 되려는 것은 흉한 도이다. 천덕은 이미 양강한데 다시 강함을 써서 앞서기를 좋아하면 지나침이 된다.
주자 『주역본의』
用九,言凡筮得陽爻者,皆用九而不用七。… 葢六陽皆變,剛而能柔,吉之道也。… 言陽剛不可為物先,故六陽皆變而吉。 용구는, 점을 쳐서 양효를 얻은 이는 모두 9(노양)를 쓰고 7(소양)을 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여섯 양이 모두 변하면 강한 것이 능히 부드러워지니 길한 도이다. 양강은 만물의 앞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여섯 양이 모두 변하여 길하다.
운봉 호씨(제가)
經言无首,言不可為首,為人之用九者言也。易存乎用,用易存乎人。 효사에서는 ’머리가 없다’고 하고 상전에서는 ’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 강함을 쓰는 사람을 위해 한 말이다. 역(易)은 씀에 있고, 역을 쓰는 일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