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수괘(需)의 초구가 성 밖 들판에서 멀찍이 기다렸다면, 구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강가 모래밭(沙)에 이르렀다. 발이 푹푹 빠지고 물살 소리가 귀에 닿는 자리다. 위험한 물(坎)이 눈앞에 가까워진 만큼, 사람들의 말도 가까워진다. “왜 아직도 건너지 않느냐”, “겁이 많은 것 아니냐” — 크지는 않으나 귀에 거슬리는 말, 곧 소유언(小有言)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효사는 이 자리를 ’마침내 길하다(終吉)’고 한다. 왜인가. 공자는 소상전에서 ’너그러움이 가운데 있기 때문(衍在中)’이라 했다. 구이는 굳센 힘을 지녔으되 부드러운 자리에 앉아, 그 힘을 밖으로 내지르지 않고 안으로 너그럽게 품는다. 남의 말에 일일이 맞서지 않고, 조급하게 물로 뛰어들지도 않는다. 정이천은 이런 사람을 ’기다림을 잘하는 자’라 불렀다. 비난이란 큰 해가 아니라 언어의 작은 상처일 뿐이며, 중심을 지키는 자에게는 스쳐 지나갈 뿐이다.
변화의 길목에 선 사람에게 이 효는 앞을 내다보며 말한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위험도 말도 함께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제 자리에 다가섰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소음에 휘둘려 자세를 잃느냐, 아니면 마음의 폭을 넓혀 흔들림 없이 때를 기다리느냐다. 힘 있는 사람일수록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운봉 호씨는 오히려 초구가 조급함을 경계받은 반면, 구이는 너그러움으로 중심에 거해 급히 나아가지 않으므로 길하다고 짚었다.
삶에의 적용
오늘 누군가의 가벼운 비난이나 뒷말이 들려오거든, 곧바로 맞받지 말라. 모래밭에 선 사람이 발에 힘을 꽉 주면 오히려 더 깊이 빠진다. 힘을 빼고 접지면을 넓혀 균형을 잡듯, 마음도 좁게 조이지 말고 너르게 펴라(衍). 호흡을 깊게 하여 중심을 아래로 내리고, 대꾸하고 싶은 충동을 한 박자 늦춘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곧 강함이며,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끝내 나를 길로 이끈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자, 초구는 성 밖(교)이라 안전했지만, 구이는 강가 모래밭(사)까지 왔네. 발이 푹푹 빠지고 물살 소리도 들려 불안하지.
그러니까 주변에서 수군대기 시작해. '저 사람 왜 안 건너가?', '겁쟁이 아니야?' 하고 헐뜯는 거지. 이게 바로 '소유언(小有言)'이야. 말로 상처를 입는 거지.
하지만 구이는 걱정 없네. 왜냐? '연재중(衍在中)'하니까. 마음속(중)에 아주 너르고 평평한 여유(연)가 있거든. 강한 능력(양)을 가졌지만, 겉으로는 부드러운 태도(음위)를 취할 줄 아는 거야.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느긋하게(관유) 기다리면 결국엔 길하다(종길)네. 귀를 닫고 마음을 넓게 가지게."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 주자, 제가
경문·소상전
九二:需于沙,小有言,終吉。
구이는 모래밭에서 기다리니, 조금 말이 있으나 마침내 길하다.
象曰:需于沙,衍在中也。雖小有言,以吉終也。
상전에 말하였다. ’수우사’는 너그러움이 가운데 있기 때문이요, 비록 조금 말이 있으나 길함으로써 마치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坎為水,水近則有沙。二去險漸近,故為需于沙。漸近於險難,雖未至於患害,已小有言矣。二以剛陽之才,而居柔守中,寛裕自處,需之善也。雖去險漸近,而未至於險,故小有言語之傷,而无大害,終得其吉也。
감(坎)은 물이니 물이 가까우면 모래가 있다. 이효는 험함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므로 ’모래에서 기다린다’고 하였다. 험난함에 점차 가까워지니, 비록 환해(患害)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이미 조금 말이 있는 것이다. 이효는 강양의 재주로서 부드러운 자리에 거하고 가운데를 지키며, 너그럽게 자처하니 기다림을 잘하는 자이다. 비록 험함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나 아직 험함에는 이르지 않았으므로, 작게 언어의 상처가 있으나 큰 해는 없어서 마침내 그 길함을 얻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수괘 구이)
衍,寛綽也。二雖近險,而以寛裕居中,故雖小有言語及之,終得其吉,善處者也。
’연(衍)’은 너그럽고 여유 있는 것이다. 이효가 비록 험함에 가까우나 너그러움으로써 가운데 거하므로, 비록 작게 비난이 그에게 미치나 마침내 그 길함을 얻으니, 대처함이 훌륭한 자이다. (정이천, 소상전 해설)
주자 『주역본의』
沙,則近於險矣。言語之傷,亦災害之小者。漸進近坎,故有此象。剛中能需,故得終吉。戒占者當如是也。
모래는 곧 험함에 가까운 것이다. ‘언어의 상처’ 또한 재해의 작은 것이다. 점차 나아가 감(坎)에 가까워지므로 이러한 상이 있다. 굳세면서 가운데에 자리해(剛中) 능히 기다리므로 ’종길’을 얻는다. 점치는 자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수괘 구이)
제가(諸家)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九二漸近坎,小有言矣。而曰終吉者,初九以剛居剛,其躁急,故雖逺險猶有戒辭;九二以剛居柔,性寛而衍在中,即乾九二寛以居之也。二以寛居中,故不急進。
구이는 감(坎)과 점차 가까워져 ’소유언’이 있는데도 ’종길’이라 한 것은, 초구는 굳센 성질로 굳센 자리에 거하여 조급하므로 비록 험함과 멀리 있어도 경계하는 말이 있는 반면, 구이는 굳센 성질로 부드러운 자리에 거하여 성품이 너그럽고 ‘너그러움이 가운데 있으니(衍在中)’, 곧 건괘 구이 문언전의 ’너그러움으로써 거처한다(寛以居之)’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효는 너그러움으로써 가운데 거하므로 급하게 나아가지 않는다.
임천 오씨가 말하였다.
有言,如鄭息有違言,謂以口語相傷也。
’유언(有言)’은 정나라와 식나라 사이에 ’위언(違言)’이 있었다는 것과 같으니, 말로써 서로 상처 입히는 것을 이른다. (임천 오씨)
태극이야기